article id #1718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구조론이 고등학생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충고 십계명
(아래 인용한,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고등학생들에게 들려줬다는 수준 이하 10계명을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1) 에너지가 있는 인간이 되라.
에너지는 모순의 낙차에서 얻어진다. 첫째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에 관심을 가져라. 둘째 사회의 원초적인 모순에도 관심을 가져라. 모순만큼 힘이다. 힘은 집중이다. 집중은 최소비용으로 최고효과를 낸다.
치열한 인간, 뜨거운 인간이 되라. 인생 전체를 올인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거룩한 분노를 가져라. 세상 전부, 인류 전체, 역사 전체와 각을 세우라. 그것이 최소한 그대에게 드라마를 안겨줄 것이다.
2) 질감있는 사람이 되라.
질감은 환경과 교감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음악에도 반응하고, 그림에도 반응하고, 환경문제에도 반응하고, 빈부격차에도 반응하고, 남녀간의 특성에도 반응하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도 반응하라.
내 안의 성스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의 그 많은 재료들과 잘 섞여들고 그 속으로 잘 녹아들어라. 매질이 물질을 녹여 혼합하게 하듯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공존하고 모든 것에 대응하라.
3) 뛰어난 개인보다는 좋은 팀이다.
자신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미리 가 있어라. 모두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타인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는 것보다 주는 것이 열배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4) 막다른 곳보다 네거리에 서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그대와 상의하고, 그대에게 질문하고, 그대에게 정보를 그대에게 가져오게 하라.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을 자신이 가지지 말고 그것을 중개하고 교통정리하는 사람이 되라.
5) 지식보다 전체과정의 경험이다.
공부로는 지식을 얻을 뿐이며 그 지식은 대개 타인을 위하여 기능한다. 반면 어떤 일의 기승전결 전체과정을 경험하면 세상을 설명하는 자기만의 언어를 얻을 수 있다. 세상 무엇이든 주도적으로 리드할 수 있다. 환경은 변화며 그 변화에 제일 먼저 대응할 수 있다. 변화된 환경의 선점이야말로 가장 이익이 크다.
6) 인생은 퍼즐맞추기다.
당신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며 공부는 지금 단계의 맞춰야 할 퍼즐조각일 뿐이다. 그것도 한 물간 어른들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일 뿐이다. 인생의 전모는 그 퍼즐을 다 맞춰봐야 아는 것이다. 공부하여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는 훈련을 할 뿐이다.
인생은 프로세스, 프로세스, 프로세스다.(영화 머니볼에 나오는 표현.머니볼은 단점의 보완보다 장점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7) 우리는 강팀이다.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간다. 인류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큰 무대의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각자 자기 개성을 살려서 다르게 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음을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통합되는 데서 기쁨을 얻고 거기서 성공을 찾아야 한다. 인류 전체의 진보 안에서 당신의 포지션을 찾아라. 인류에 기여하는 것이 성공이다. 성공한 팀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이다.
8) 수비보다 공격하라.
보수는 수비수, 진보는 공격수다. 인생의 게임에서 수비수가 되지 말고 공격수를 자원하라. 수비는 한 곳만 뚫려도 전체가 망가지지만 공격은 한 곳만 뚫어도 전체가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 시너지 효과가 큰 것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다. 긍정하고 도전하고 진보할 때 성공의 가치는 극대화 된다.
9) 자기를 배제하라.
자기를 배제할 때 팀이 드러난다. 환경이 드러나고 진리가 드러나고 프로세스가 드러나고 가야할 길이 찾아진다. 자기와 관련시키지 않고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마침내 그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게 좋아 그래서 이걸 선택했어’ 하고 말하면 실패다. ‘여기서는 이게 규칙에 맞아. 그러므로 이걸 선택해야 해.’ 하고 말할 때 무언가를 아는 것이다. 그 규칙은 타인과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 최고의 사람을 만나라.
인생은 양보다 질이다. 질은 레벨을 높이는 것이다. 최고의 그룹에 소속되는 것이 가장 가치있다. 그것은 돈 많은 그룹이 아니라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그룹에 소속되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 가장 창의적인 그룹, 가장 혁신적인 그룹, 가장 전위에 선 그룹, 가장 역동적인 그룹, 가장 자유롭고 고상한 그룹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그 그룹을 이끄는 것이 가징 큰 성공이다.
###
우리가 꿈 꾸는 대안교육은 애들 머리 속에 뭔가 주입하는게 아니다. 구조론이 주장하는 것은 최고의 포지션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먹히고 효과는 극대화 된다.
그런데 머리 나쁜 노력파 애들 몇 낑겨 있으면 데이터 왜곡현상이 일어나으로 최고의 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 우리가 대안학교를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최고의 괴짜 100명을 모아서 그들로부터 하루씩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멋진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지적인 충격을 받는 것이다. 그 충격이 자산이 된다. 좋은 교육이란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챙겨주고 만났을 때 쫄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소스를 쥐어주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예로 든다면, 그 선생이 가르친 내용보다 단지 그 선생이 멋쟁이이고 멋쟁이와 같은 공간에 거주한다면 저절로 스며드는 것이 있다. 그게 진짜 교육이다. 이렇다 저렇다 가르치는 것은 뭣도 아니다.
예술을 알고 멋을 알고 진짜배기를 아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고등학생이 빌 게이츠를 만났다면 그 자체로 좋은 지적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시시하다.
강의석, 낸시랭, 이외수, 임재범, 김태원, 김어준 등등 이런 사람은 멋진 선생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수비수보다 공격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인류의 삶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사람들이다. 옳건 그르건 상관없이 그들은 인류의 삶을 풍성하게 했다. 설사 틀려도 쫄지 말고 인류의 무대를 넓혀가야 한다.
빌게이츠가 고등학생들에게 한 인생충고 십계명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2. 세상에 너희들 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3.대학교육을 받지않은 상태에서 연봉 4만달러가 될것이라고는 상상하지마라.
4.학교 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하거든 사회에 나와서 직장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한번 느껴봐라.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6. 네 인생을 내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탓을 하지마라. 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7. 학교는 승자와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현실은 이와 다르다는것을 명심해라.
8.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되어 있지도않고 여름방학이라는 것은 아예 있지도 않다.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지않으면 직장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9.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커피를 마셧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10. 공부밖에 할줄모르는 "바보"한테 잘 보여라.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전형적인 플러스 사고의 실패사례.
보석과 돌이 섞여 있을 때 빛나는 보석이 아닌 지저분한 돌에 먼저 관심이 갔다면 이미 실패. 이건 불평하는 애들한테 불평하는 소리.
article id #1715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구조론이 어렵다는 분에게는 정답만 찍어주기로 한다. 구조론 10계명을 정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5분만에 쓴 내용이므로 아래 각 항목의 내용은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사실 전부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기도 하다.
- 구조론 10계명 -
1) 마이너스로 가라. 2) 탑 포지션을 차지하라. 3)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상호작용의 밀도를 올려라. 5) 에너지의 결을 따르라. 6) 나쁜 길로 가라. 7) 2로써 1을 이겨라. 8) 완전성을 이해하라. 9) 세력을 형성하라. 10) 선 공간공격 후 시간공격이다.
이상의 내용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머리 속에 입체적 모형을 그리고 이미지를 띄우는게 중요하다. 상호관계의 시소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시소에서 내리는 마이너스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마이너스 – 에너지가 가는 순방향이다. ◎ 플러스 – 에너지가 없는 역방향이다.
구조론은 한 마디로 '에너지의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이너스는 에너지가 가는 순방향이고, 플러스는 순리를 거스르는 역방향이다. 언제라도 순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선택의 기로에 서면 대부분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한 두명이 잘못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열이면 열, 다 잘못 판단한다. 만약 바른 선택을 한다면 사전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선택을 보고 그 반대로 움직인 경우 등으로 외부 환경이 개입된 경우다. 외부환경의 개입이 없이 완전 생초짜 상황이면 거의 전부 잘못된 선택을 한다. 원래 구조가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어떤 판단과 결정은 대상과의 상호관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시소 위에 올라타 있다.
상황이 발생한 즉 이미 역설이 작동하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 의도는 항상 반대로 된다. 얻으려고 할수록 잃으며, 지키려고 할수록 뺏긴다.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는 마이너스를 실행하여 먹이를 던져주고 재빨리 그 현장을 이탈하라.
왜 MC몽은 오판을 계속해서 스스로 매를 버는가? 왜 이하늘은 오판을 계속해서 스스로 매를 버는가? 상대의 반응을 떠보고 2차로 자기 판단을 하려는 꼼수 때문이다. 이때 상대는 되치기로 반응하며 상호작용을 늘려서 탑 포지션을 차지한다. 탑 포지션을 뺏겼다면 무조건 진다.
MC몽이나 이하늘은 어떻게 대응하든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그 경우에는 딴 생각하지 말고 마이너스를 실행하여 재빨리 그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철수는 다르다. 이 양반 뭔가를 안다. 상대의 반응을 떠보지 않고 바로 결단을 내렸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상대가 5 정도를 예상하고 있을 때 10이나 혹은 100까지 진도를 나가버리는 것이다. 이명박과 반대다.
유시민도 논객 출신이라서 말이 많은 편인데 말로 상대의 반응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떻게든 상대가 반응하면 그 반응하는 상대에게 유익하다.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마이크 넘기지 말아야 한다.
강호동도 약간 안다.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마이너스를 행하여 재빨리 현장을 이탈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 했다. 역설의 시소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은 이미 역설의 시소 위에 올라탄 것이다. 이때 시소는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속지 말고 의연하게 제 길을 가야 한다. 길을 알고 가야 그것은 가능하다.
간단하다. 계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한바탕 휘저으면 상호작용이 증가하며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 그 길을 가면 된다. 어떤 판단을 할 때 에너지가 갑이고 자신은 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지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상호관계에 속지 말고 에너지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일을 벌이고 주도권을 잡고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만들어져 있는 시소에 올라타고 있지 말고, 밖에서 다른 시소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거기에 태워야 한다.
◎ 시스템 - 5포지션으로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가 순환되는 진화형 생장구조를 건설하라.
◎ 메커니즘 – 4포지션으로 ‘A면 B다’를 충족시키는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구축하라.
◎ 구조 – 3포지션으로 YES와 NO를 판정하는 시소형 대칭구조를 세팅하라.
◎ 패턴 – 2포지션으로 토대를 공유하는 닮음을 찾아 서로 짝지어라.
◎ 팩트 – 1포지션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정하라.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팩트를 거론하면서 어설픈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이하늘의 구구절절한 과거사 파헤치기가 그렇다. 팩트야 말로 수구꼴통과 무뇌좌파가 사기치는데 동원하는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팩트로 논하면 이명박이 이기고, PD수첩이 진다. 팩트가 아닌 본질로 승부해야 한다. 사실관계가 문제가 아니고 포지션이 문제다. 포지션으로 보면 이미 당신은 시스템과 메커니즘과 구조 안으로 들어와 있다. 이미 역설의 시소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이때 시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시소는 위의 3번 구조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구조는 시스템, 메커니즘, 구조(스트럭쳐), 패턴, 팩트 전부를 통칭해서 말하지만 일단 3번째 구조가 구조 중에서 구조다.
구조는 메커니즘과 시스템이 유익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미 구조가 강호동과 MC몽과 이하늘과 이명박과 나경원과 오세훈과 안철수를 태웠을 때는 공동체에 유익하게 작동하며 이들을 마이너스 시키는 것이다. 구조가 작동하면 무조건 공동체에 유익하다.
구조는 무조건 시스템을 발달시키고 메커니즘을 작동하는 순방향으로 움직이며 그대를 패대기친다. 이때 구조를 모르고 시스템을 건드린 MC몽, 이하늘, 이명박. 나경원, 오세훈은 자연패대기를 당했고, 구조를 간파한 안철수는 1500억을 마이너스 하여 오히려 그 에너지에 올라탔으며, 강호동은 현장이탈초식을 구사하여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했다.
article id #1697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양모님(함성한)의 격투기 구조론에서 .. 구조론의 질에 해당하는 것은 마인드.. 그것은 눈빛.. 눈빛이라는게 뭘까?
- 경력에 따라 눈빛이 달라진다. 사장은 사납고, 부장은 음흉하고, 과장은 허풍쟁이, 대리는 천방지축, 사원은 무개념, 인턴은 겁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사장이 제일 눈동자가 작다.-
그것은 상대방의 전체를 보는 눈이다. 모니터를 낮은 위치에서 보면 글자가 커보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글자가 작아 보인다. 황소는 눈동자가 커서 상대방이 자기보다 커보이므로 겁이 많다. 사자나 호랑이는 눈동자가 작아서 상대방이 자기보다 작아보인다. 상대방이 작아보여야 전모를 볼 수 있다. 상대의 동작 전체를 순간적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고수의 눈빛이란 전모를 보는 것이다.
허영만 화백이 해석한 징기스칸의 눈빛.. 사백안이다. 만화가 진행될수록 눈동자가 점점 작아져서 사장이 되어가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는 원래 사백안이다.
째려보고 노려보면 상대가 작아보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째려보기만 하면 되는가? 그건 아니다. 상대방의 동작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타격을 연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레프트로 막고 다음 라이트로 치고 이렇게 주워섬기면 연동되지 않은 것이다. 둘 이상의 동작이 하나의 판단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동작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눈빛이 선해진 용팔이 김용남씨..
그런 연습을 많이 하면 눈빛에 그것이 반영된다. 그리고 실제로 눈동자가 작아져서 사백안이 되면 조폭으로 오인된다. 실제로 눈이 변한다. 조양은이나 용팔이 김태촌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타짜에 조언해준 타짜 장병윤씨의 사기도박 동영상에 보면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은 밀도다. 밀도는 여럿을 한 자리에 우겨넣은 것이다. 즉 1 안에 2가 들어간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상대방의 상체와 하체가 따로따로 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들어가는 것이며, 시간적으로는 상대방의 첫 번째 동작과 두 번째 동작을 동시에 읽고 대응하는 것이며, 타격에서는 첫 번째 가격과 두 번째 가격이 연속적으로 장탄된 것이다. 한 번 방아쇠를 당겨서 두 발을 연이어 쏜다.
그런 것은 눈빛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므로 하수는 고수의 눈빛만 봐도 얼어버린다. 상대가 나의 몸 전체를 주시하고 장악하고 지배하고 마음까지 훤하게 읽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타짜 장병윤씨.. 사기도박 동양상을 보면 눈빛이 번뜩이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이 양반은 항상 바닥에 깔아놓은 화투판과 상대방을 동시에 보고 있다.
문제는 여자다. 여자들은 남자의 눈빛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 같은 여자의 눈빛은 잘 읽는지 몰라도. 최홍만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까지 자신에게 시비를 건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비를 걸고 행패를 부리는 여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여자들은 최홍만이 귀엽다고 한다. ‘최홍만 귀엽잖아. 골려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 거다. 어디가 귀엽다는 걸까? 나쁜남자 증후군이 있다. 고르고 골라서 나쁜 남자를 피하려고 노력할수록 도리어 나쁜남자에게 걸리는 거다.
나쁜 남자가 연애때는 나쁜 남자 티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본능적으로 안다. 딱 보면 나쁜 남자다. 여자는? 모른다. 최홍만이 귀여운데 나쁜 남자가 나쁘게 보이겠느냐 말이다.
나쁜 남자 joe son, 딱봐도 흉악범이다. 수십건의 성폭행과 살인, 심지어 교도소 살인까지 저질렀다. 근데 이 사람을 보고 귀엽다고 할 여자가 있을 것만 같다.
문제는 나쁜남자가 그 나쁜남자에게 당하는 여자의 마음을 읽고있다는 거다. 그리고 연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한다. 눈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권투를 해보면 연속동작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일타 이타 삼타까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눈빛이 있다. 어떻든 상대방의 신체 전체를 봐야 한다. 눈을 동그랗게 크게 치켜뜨고 보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게 예측하고 대응할 때 저절로 눈동자가 작아진다는 말이다.
article id #1687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위상의 균일
자연계는 기본적으로 밀도가 걸려 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5포지션이다. 4포지션을 초과하는 위상의 균일은 없으므로 4포지션은 안정되나 1,2,3포지션은 상위 포지션에 흡수되므로 불안정하다. 주변에 더 높은 포지션이 있을 때 외력의 작용을 받아 하위 포지션은 상위 포지션에 흡수된다. 불안정한 1,2,3 포지션은 자연계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항상 다른 것에 빌붙어 있으며 운동할 때의 포지션 이동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성립한다. 4포지션은 안정되어 있으나 자체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다. 자연계에서 모든 사건은 5포지션에서 일어난다.
권투선수는 입체이므로 4포지션이다. 4포지션으로는 대칭이 성립되지 않아 힘을 쓸수 없으므로 발로 땅을 굴러서 그 반작용의 힘으로 1을 얻어 5를 만들어 펀치를 쏘아보낸다. 이때 몸통의 4, 어깨의 3, 팔의 2, 주먹의 1포지션으로 포지션은 한 단계씩 층위가 내려간다. 곧 마이너스로 가는 것이다. 권투선수가 지구의 힘을 빌지 않고 허공에서 힘을 쓰려면 자기 내부에서 5포지션을 만들어야 한다. 제자리 높이뛰기를 하듯이 몸을 움츠렸다가 펼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매우 약하다. 로켓은 개스를 분사하여 우주공간에서도 5포지션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개스가 몸통에서 이탈한다. 자신이 파괴되어야만 힘을 쓰는 것이다. 4포지션만으로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
하나의 일은 5>4>3>2>1포지션 순서로만 일어난다. 5포지션에서 3포지션이나 2포지션으로 건너뛸 수는 없다. 왜냐하면 힘의 전달은 각 단계에서 부분적인 대칭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힘의 전달은 5:5>4:4>3:3>2:2>1:1의 순서로 5회에 걸쳐 부분적인 대칭을 성립시킨다. 5포지션에서 하나를 빼고 남는 4로 4포지션의 4와 대칭되고 다시 4포지션에서 하나를 빼고 남는 3으로 3포지션의 3과 대칭되는 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일은 위상이 한 레벨씩 낮아지는 형태로만 일어나고 힘의 전달은 위상이 같은 상태에서만 일어난다. 위상이 낮은 선에서 위상이 높은 각으로는 힘을 전달할 수 없다. 하극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에 빠진 사람이 물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부하가 상사에게 힘을 쓸 수 없듯이 낮은 위상은 높은 위상에게 힘을 전달할 수 없다.
총은 총알을 쏠 수 있지만 총알은 총을 쏠 수 없다.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은 그 떠내려가는 운동이 1차원 선이므로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힘을 전달할 수 없다. 점은 선을 칠 수 없고, 선은 각을 칠 수 없으며, 각은 입체를 칠 수 없고, 입체는 밀도를 칠 수 없다.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낮은 위상에서 높은 위상으로 힘을 가하려 하면 높은 위상은 낮은 위상을 지팡이로 삼아 오히려 지탱한다. 위상이 낮은 사람이 위상이 높은 사람을 일제히 공격하면 위상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더 안정된다. 이런 현상은 정치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은 안티들의 공격이 오히려 그 사람의 입지를 공고하게 한다. 반면 위상이 낮은 연예인들은 한 방에 훅 간다.
양은 운동을 안정시키고, 운동은 힘을 안정시키며, 힘은 입자를 안정시키고, 입자는 밀도를 안정시킨다. 위상이 높은 상대에게 흡수되어 도리어 상대를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입자가 많은 힘에 둘러싸여 공격당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이는 건물이 무게에 짓눌릴수록 오히려 안정되는 것과 같다. 피라밋은 입자를 이루고 있다. 많은 힘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다. 그러므로 입자인 자동차가 너무 가벼우면 곤란하다. 항해하는 배가 바닥짐(ballast)을 싣듯이 힘이 무거워야 입자가 편안하다. 위상이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치는 하극상은 오히려 상대를 이롭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은 위상의 균일을 따라간다. 그것이 결이다. 자연계에서 모든 운동은 결을 따라 일어난다.
article id #1686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바닥의 메커니즘
메커니즘이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대칭성이다. 손학규 들어오면 유시민 나가고, 정동영 들어오면 추미애 나간다. 김흥국 들어오면 우르르 다 나간다. 4포지션에서 위상의 균일이 일어나므로 제로섬구조가 세팅되어 5포지션에서는 반드시 하나가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격리되고 바닥이 좁은 시골에서 이런 문제는 잘 관찰된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외연을 끌어들여 판을 키움으로써 더 큰 단위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도시가 되고, 대제국이 되고, 대기업이 되어야 한다. 중소기업이라면 유능한 인재 하나가 들어올때마다 박힌 돌이 하나씩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하나씩 들여오면 안 되고 들여올 때는 한꺼번에 왕창 들여와야 한다. 문재인이 안철수, 박원순, 박경철 등 시민단체세력과 유시민, 이해찬, 김두관 등 범친노세력을 묶고 거기다가 민노당까지 덤으로 끼워서 민주당과 빅딜을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12세기 몽골부족은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몽골족, 케레이트족, 나이만족, 타타르족, 메르키트족으로 갈라져 서로 견제하며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는 무한순환구조가 반복되었다. 징기스칸은 눈을 밖으로 돌려 아랍과 중국과 유럽을 포함한 더 큰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바닥의 생리 문제를 해결했다. 메커니즘을 뜯어고친 것이다. 판구조를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로마인들의 눈을 이탈리아 반도 바깥으로 돌려놓은 카이사르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의 무뇌좌파들은 여전히 발목잡기식 내부투쟁의 무한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구꼴통 역시 북한과의 내부 발목잡기놀이 중독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바닥이 좁은 반도국가에서 반도인의 편협한 시야를 대륙인의 넓은 시야로 바꿔놓은 카이사르가 인기있는 것은 당연하다..
article id #1684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5분만에 끝내는 철학강의
수학은 1 대 1로 대응시켜서 짝짓는 분석법이고 철학은 반대로 모형적 사고를 통하여 그 나누어진 것을 통짜덩어리로 합쳐서 인식하는 방법이다. 이건 뭐 1초만에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다.
철학은 대개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세상에 철학자들이 많지만 알아듣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왜? 실은 지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철학은 모형인데 지들도 제대로 된 사유의 모형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원으로 보면 생각(think)에는 속, 쏘다, 찌르다는 뜻이 있다. thorn, through, thought, thank로 전개되는데 가시처럼 속으로 쏘다, 속으로 쏘아서 관통하다는 뜻이다. 머릿속을 찌르면서 동시에 사물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이 생각이다.
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다. 생각하는 방법은 사건의 내부를 찌르면서 관통하는 것이다. 사건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은 인과율이다. 원인에서 시작되어 결과로 끝나기까지 사건의 속으로 찌르고 들어가며 관통한다. 그 시간의 인과율을 공간적으로 구축해 놓은 것이 모형이며 모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철학이다.
현대철학의 중심에 구조주의가 있다. 구조주의는 20세기 사상계를 지배했던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 극복하고 있다.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칸트철학을 비판, 극복하고 있고, 칸트철학은 중세의 교부철학을 계승하고 있고, 교부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표절하고 있다.
모든 것의 뿌리는 이데아론이다. 이데아론은 간단히 시간적인 순서로 전개되는 인과율을 공간적으로 구축해놓은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질료와 형상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이데아론이 최초의 생각모형이다.
생각은 화살처럼 사건을 관통하는 것이며, 그 화살은 시간을 따라 진행하며, 그것을 공간적으로 구성하여 일정한 모형을 도출하는 것이 철학이다. 플라톤이 처음 그것을 해낸 것이다.
질료와 형상으로 나누어 각각 이름을 붙였지만 본질은 화살이다. 질료와 형상으로 둘이 아니고 화살 하나다. 그 하나의 화살을 얻은 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반면 질료따로 형상따로 따로노는 사람은 배의 이물과 고물이 각각 따로 움직여 방향을 종잡지 못하듯 바람따라 파도따라 흔들리며 헤매게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망각한다. 봄에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데 가을이 되면 꼭 분쟁이 일어난다. “심봤다!” “어? 그거 사실은 내가 봄에 심어놓은 장뇌삼인뎅?” “증거있어?” 질료따로 형상따로 나누어진 것이다.
모형적 사고를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본래의 화살 하나로 환원시킬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주워섬기기 사고가 있었다. 주워섬기기는 그리스의 다신론이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의 신 때문이다. 불화하는 이유는? 불화의 신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잘 사는 이유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의 숫자만큼 신의 숫자가 생겨난다.
비너스란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비너스가 아름다운 이유는 복을 받아서 그 복이 몸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미인이 되고자 한다면 신전에 돈을 바치고 비너스 신의 발등에 키스하며 비너스의 복을 빨아들이면 된다. 비너스 신전의 제사장이 그걸로 대박을 냈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이라면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원인이 하나씩 생겨나므로 너무 많다. 허무해지고 만다. 무당집 푸닥거리와 같다. 아무리 액을 막아도 사방팔방에 새로운 액이 나타난다. 온갖 급살을 다 맞고, 온갖 부정을 다 타고, 온갖 잡귀가 다 침노해온다. 부적을 붙여도 붙여도 끝이 없다.
한 줄에 꿰어 사고해야 한다. 하나의 화살을 찾아야 한다. 이 방면의 원조는 물 일원론의 탈레스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물 일원론이 굉장한 영감을 주지만 저 높은 곳에 있어서 단지 영감만을 줄 뿐이고 현실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물 일원론은 막연한 논리적 당위일 뿐 윤리, 도덕, 정의, 선악과 같은 구체적 현실에 대입시키기는 어렵다.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은 모순형태로 존재하며 대개 흑백 이분법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
플라톤이 최초로 쓸모있는 모형을 제시했다. 흑과 백,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여당과 야당,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처럼 이분법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의 온갖 모순과 바로 통한다. 그 둘을 하나의 화살에 꿰어낸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를 차용한 것이 교부철학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곧 신이고 영혼이고 천국이며 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거가 되고 선과 악의 구분선이 된다는 것이다. 저 높은 곳에서 신의 화살이 우리를 쏘고 있다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형태로 우리 몸 안으로 그 화살이 침투해 왔다는 것이다.
허무한 상상에 불과하다. 이를 억지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것이 칸트의 순수이성, 실천이성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이다. 신의 이데아가 우리 몸에 들어와 있는게 이성이라는 거다. 다 상상이고 보이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실존개념이다. 이데아는 저 멀리 천국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말만 그럴듯할 뿐 결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그래서 어쩌라구? 시니컬해지고 만다.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뿐 똑부러지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마르크스는 과학으로 도피하고 있다. 그 이데아는 과학의 법칙이라는 거다. 과학이라는 화살이 인간을 쏘고 있다는 것이다. 딴 데서 신통한거 찾을 거 없고 과학적 법칙만 알면 된다는 거다. 그러나 역시 허무할 뿐이다. 인간의 삶과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개념 역시 남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교회나 사찰에서 뭔가 삶의 답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침묵할 뿐이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관심사일 뿐이고 삶은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구조주의는 언어학으로 출발한 그룹과 인류학으로 출발한 그룹이 있는데 미학적 완전성을 답으로 제시한다. 이데아는 미학적 완전성이다. 미학이 인간을 쏘고 있다. 인간은 이미 그 미학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삶을 완성시키려고 하고 삶의 일관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명제가 중요한 것은 서구 백인 기독교문명 중심의 과학우월주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과학대로라면 과학의 진보가 곧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고, 따라서 호주의 애보리진이나 남아메리카 부족민의 삶은 가치없는 것이 되고만다. 과학에서 벗어난 가난한 삶, 질박한 삶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어느 지역 어떤 문명이든 내재한 자기완결성이 있고 고유한 완전성이 있고 그에 따른 가치가 있다는 거다. 이게 이상하게 전개되어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으로 치달아 북한정권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마르크스의 중앙집권식 사고에 저항하는 정도의 의미는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미학이다. 이데아는 미학이다. 모든 인간은 미학의 화살을 맞았다. 그러므로 그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문명을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공동체를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방향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지역 어떤 세계든 독립적인 완성형이 있다. 한국문화는 한국문화대로의 자기스타일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면 서구문명만 가치있고 한국문명은 쓸모없는 것이 되지만 구조주의로 보면 그렇지 않다.
부족민은 부족민대로, 미국문명은 미국문명대로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인류보편의 공통스타일도 있고 한 개인의 자기스타일도 있다. 각자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인류공통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구조론의 이상이다. 한 지류를 흐르더라도 바다를 보고 방향을 잡아 흘러가야 한다는 거다.
그냥 자기 스타일, 자기 개성만 강조하는 식으로는 고립되고 만다. 물론 자기 스타일을 완성해야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의식하고 21세기라는 공통코드 안에서 자기의 분명한 좌표를 확립해야 한다. 어느 골짜기를 작게 흐르더라도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미학이 최종적인 이데아이며 찍어주는 정답이며 똑부러지는 최종결론이며 그것은 계 안에서의 완성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이고 가치이고 옳은 것이고 선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정의고 그 모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필자의 구조론적 입장이다. 서구 구조주의 철학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같은 궤도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형적 사고를 통하여 미학에 도달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반합을 동일한 공간에 포지셔닝 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정-반에서 합으로 가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만다. 인과율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회로는 공간적 구축이다. 봄에 스위치를 켜면 가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들어온다.
봄이 지나고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시소의 이쪽이 오름과 동시에 저쪽은 내린다. 물가가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시장원리는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 동조하고 있다. 동시에 공명하고 있다. 시간간격을 두지 않는다.
천칭저울의 좌우는 동시에 움직인다. 원인이 지나고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한다. 그러므로 미학이어야 한다. 미학은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다. 동시에 움직이므로 미학이다.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1백개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낸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제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미학의 모형이며 그것을 이미 얻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이미 풀린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 나중으로 순서대로 줄세워서 질서를 정하기는 쉽다. 재벌이 먼저 먹 고 남은 것을 중소기업이 먹는다. 주인이 먼저 먹고 남은 것을 하인이 먹는다. 그러나 이래서는 아름답지가 않다. 동시에 같이 먹으면서도 그림을 만들어야 진짜다. 그것이 예술이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각 악기가 한 파트씩 따로 고유한 제 목소리를 내다가 어느 한 순간의 절정에 도달해서는 일제히 정상으로 치닫는다. 모든 악기와 모든 목소리가 한 순간에 극한의 절정을 넘어가는 것이다. 숨넘어가듯이 넘어간다. 각기 때로 완성되었던 것이 한 순간에 집약된다. 그것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화살을 맞아야 한다.
플라톤부터 시작된 재래의 이원론은 결국 시간적 순서를 매기는 것이다.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다는 식이다. 임금이 먼저 먹고 남긴 것을 신하가 먹는다. 질서가 정연하지만 아름답지가 않다. 딱딱하게 죽어있다. 앞서가는 자는 앞서가고 뒤져가는 자는 뒤져간다.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이 한 순간에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한다. 베토벤의 운명이라도 그렇다. 각자 제 목소리를 내다가 절정에 도달해서는 한 순간에 콰콰콰쾅 하고 쏟아붓는다. 그 순간에 차별은 없다. 질서를 뛰어넘은 질서가 있다.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화살을 맞은 인류는 모두 한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각자 자기스타일을 개성있게 완성하면서도 운명의 한 순간에는 모든 화력을 일제히 한 지점에 쏟아붓는다. 극을 넘어선다.
그 화살그림 하나를 얻은 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수학으로 낱낱이 쪼개진 것을 한꺼번에 한덩어리로 모아낼 수 있다.
바퀴벌레 아이큐를 어떻게 사람 아이큐를 대입하여 측정한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여간 벌레든 인간이든 스트레스를 주면 순간적으로 지능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받을때 지능이 올라가는 이유는 구조의 대칭원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칭원리는 ‘상대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응수논리다.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파악만 되면 자신의 응수는 자연히 도출된다.
하등동물도 상대의 의도만 파악하면 충분히 고단수의 대응을 할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게 그렇다. 그런데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는 쥐가 감히 고양이를 물 생각을 못한다는게 구조론의 핵심이다. 쥐가 겁이 많아서 그런게 아니고 구조적으로 그게 잘 안 되게 되어 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게 아니라 구조론적인 이유로 아예 머리를 돌리지 않는 것이다. 인간도 궁지에 몰리기 전까지는 명박을 해결할 생각을 못하듯이.
생각을 하려면 일단 뇌의 프로세스를 중단시켜야 하는데 강력한 스트레스가 그 역할을 한다. 뇌의 활동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어떤 프로세스를 걸어주면 계속 그 흐름을 따라가려 하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
길거리에 여러 사람이 있는데 방송국에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 튀어!' 하고 명령을 내린 다음 군중으로 위장한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달아나면 몰카의 희생자는 얼떨결에 같이 달아나는데 물리적인 장애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왜 달리고 있지?' <- 이걸 생각 못한다.
신호를 기다리다가 한 사람이 건너면 파란불도 아닌데 일제히 건너듯이 그냥 남들이 달리니까 자기도 달리는 거. 무심코 명령대로 하면서 자기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는 것. 이런 식으로 어떤 상황을 줘서 사람의 지능을 떨어뜨려 놓는 심리기술은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하다.
가위바위보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암시에 걸려드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다. 상대가 가위를 내도록 암시를 걸었더니 실제로 가위를 내더라. 간단하다. 가위라는 단어를 입력시켜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수법을 항상 써먹을 수는 없다. 몇 번 속으면 더 속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암시에 잘 걸려드는 사람이 있다.
어떤 상황을 설계해놓고 지속적으로 프로세스를 진행시켜 사람의 지능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뛰어난 축구선수들은 그 방법으로 상대방 수비를 따돌리곤 한다. 먼저 일정한 패턴의 형(形)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가 이쪽의 형을 파악했다고 믿을 때 그 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때 멍청한 수비수는 같은 수법에 무려 세 번 씩이나 반복해서 당하는 징크스가 있다.
1) 일부러 헛스윙을 해준다. 2) 초보투수는 자기 투구가 먹히는 줄로 알고 같은 코스로 한 번 더 넣는다. 3) 타자는 노렸던 그 공으로 홈런을 친다. 4) 이때 초보투수는 확인하고 싶은 심리 때문에 같은 코스로 한 번 더 공을 던지게 된다. (오기로 같은 코스로 던지되 약간 더 구속을 올려서. 이래도 치냐?) 5) 타자는 그 코스를 노려서 한 번 더 홈런을 친다. 6) 초보투수는 자신이 당했음을 깨닫고 그 코스로 공을 넣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7) 타자는 의도적으로 타석을 벗어나는 등으로 신경전을 펼쳐서 투수를 당황하게 만든다.(야 멍청아. 아까 그 코스 한번 더 줘!) 8) 초보투수는 그 코스로 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실수로 한번 더 그 코스로 던진다. (근육이 코스를 기억하고 있으므로 당황하면 무의식적으로 같은 코스로 던지게 된다. 뇌는 YES와 NO를 잘 구분하지 못하므로 ‘아까 그 코스로 던지지 말아야지’하는 정보가 막상 공을 던질 때는 ‘아까 그 코스로’가 된다.) 9) 타자는 노리고 있다가 한 번 더 홈런을 친다. 10) 감독이 초보투수를 존나게 갈궈서 강력한 스트레스를 주면 투수가 정신차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던진다. 11) 이 정도면 LG 임찬규가 왜 계속 볼만 던져서 3점 내주고 승리를 헌납했는지 알만한 거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트레스를 주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는 창의하기 위하여 구조의 대칭원리를 사용할 때 구조의 모듈을 만들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아파서 몸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머리에 그림을 그려서 모형을 띄워놓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나의 대응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리적 자극이 일어나 몸이 아프기 때문에 몸으로 그 모형을 대신하는 것이다. 숨이 콱 막힐 때 그 아픈 상황을 상대의 공격으로 놓으면 자기의 대응이 자연히 도출된다.
1) 고양이의 공격으로 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2) 스트레스의 고통에 의한 근육의 경직을 자연히 반격행동으로 연결시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움찔하며 근육이 경직되고, 쥐먹이 꽉 쥐어지고 자연히 그 꽉쥔 주먹으로 맞받아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이 뇌세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뇌의 작동도 이러한 대칭원리를 따라간다. 제갈량의 고단수도 실은 나무막대기 정도의 아이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농구시합때 작전타임이 되면 허재감독이 조그만 작전판을 들고 열심히 그려가면서 설명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 자연히 그런 것이 그려진다. 근육에 작전판이 새겨진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굉장히 멍청하다. 인간의 지능이란 것이 사실 구조론의 대칭원리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천재나 둔재나 아이큐 차이는 없다시피 하다. 반대로 둔재도 구조론의 툴을 사용하면 천재처럼 창의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의도를 읽을 수만 있다면 의표를 찌르는 것은 매우 쉽다. 애초에 상대방의 의도를 못읽는게 문제지 의도를 읽었다면 구조론의 툴을 사용하여 상대를 공략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리 나쁜 장비도 가끔 천재적인 작전을 생각해낸다.
인간이 멍청한 이유는..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으로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내려가면서 아이큐가 1/5씩 낮아지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을 걸어주면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으로 계속 판단의 포지션이 내려가므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때 아이큐를 올려주려면 뒷통수를 강타하여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면 된다. 그 경우 스트레스를 받아서 뇌가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질의 상태로 되돌아가므로 머리가 원상복구 된다.
고수는 의식적으로 훈련하여 질의 상태로 계속 머무를 수 있다. 상황에 홀리지 않을 수 있다. 정신차릴 수 있다. 상황의 흐름을 읽고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 중에서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경험많은 고수가 경험없는 신참을 놀려먹는 것은 대부분 이 원리를 사용한 것이다. 주로 갈구는 방법으로 신경전을 펼쳐서 지속적으로 상황을 유발시키며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하여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언제든지 프로세스를 중단할 수 있으므로 머리가 나빠지지 않는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은 달리는 방향을 바꾸는 간단한 일도 하지 못한다. 머리가 나쁜게 아니라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유투브 동영상에서 마을에 내려온 어미 사슴이 새끼 사슴을 얕은 구덩이에 숨겨놓고 개를 마구 짓밟아서 혼내주는 것을 보았다. 이때 어미 사슴이 개를 새끼사슴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떼어놓고 공격한 것이 이채롭다. 어미사슴이 매우 영리하게 행동한 것이다.
새끼를 낳은 어미 사슴은 신경이 곤두서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매우 영리해진다.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것도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나타나면 꼬리를 살살 흔들어서 사람이 여우를 따라오게 한다. 새끼가 있는 굴로부터 최대한 멀리 떼어놓자는 것이다. 충분한 거리가 되면 여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이렇듯 동물은 지능이 낮은게 아니라 대개 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개장수가 개를 제압하는 것이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저씨가 두루마리 휴지로 사자를 제압하는 것이나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영리해지므로 사자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사자를 정면으로 노려본다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을 치면 흥분한 사자가 영리해져서 바로 공격해오는 것이다.
축구시합에도 결이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서로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 결이다. 미드필드에서 패스플레이를 하면서 어떤 형태를 만들면 결이 생겨나고 그 결은 상대편에게도 전염된다. 상대편이 이쪽의 결에 올려태워졌을 때 파격을 일으키면 상대팀은 순식간에 바보가 된다. 바르샤가 맨유를 바보만든 것도 그 방법이다. 조광래가 패스축구를 한다지만 이 수준은 까맣게 멀었을 거다.
축구전술의 진화는 하부구조의 량에서 상부구조의 질로 한 단계씩 옮겨가는 것이다. 1세대는 물레방아의 방아공이만 쓰는 것이며, 2세대는 물레와 방아의 연결부위를 쓰는 것이고, 3세대는 물레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4세대가 나온다면 어떻든 그것은 수비수의 공격가담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선수들은 패스를 받을 때 0.5초 정도 공을 세워놓고 두리번 거린다. 바르샤는 축구의 결을 따라 멈칫하지 않고 물흐르듯이 움직여간다. 여기에는 형이 있는 것이며 형이 있으므로 그 형을 역으로 작동시키는 파격도 있다. 이때 상대방 수비수는 갑자기 바보가 되어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구조론은 뇌구조 상 속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고도 속는 거다. 초보투수가 세 번 홈런을 맞듯이 같은 수법에 계속 당한다. 물론 충분히 정신차리고 훈련한다면 막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사전에 상대방의 패턴을 파악하고 충분히 대비한다면 맨유가 바르샤를 막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월드컵에서 축구 좀 안다는 사람들이 시합이 계속될수록 상대팀이 이쪽팀을 파악하고 사전에 대비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전에서 상대팀이 바보되었다고 해서 한국과 대결하는 다른 팀도 당연히 바보될 거라는 식이었다.
‘차두리가 실수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차두리가 파악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상대방이 지능적인 행동으로 차두리의 지능이 떨어지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꿰뚫어보지 못했던 거다. 당황한 차두리는 같은 코스로 세 번씩이나 상대방이 받아먹기 좋게 올려주는 모습을 보였다.
전술의 핵심은 수비수포함 있는 자원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것이다. 60년대 벌떼축구는 펠레 한 사람만 뛰고 있고 나머지는 놀고 있다.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선수도 낭비하고 공간도 낭비한다. 비어있는 공간, 놀고있는 선수를 없애서 닫힌계 내부의 밀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축구의 진화다.
창의는 그냥 머리를 쥐어짜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높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낮은 포지션으로 내려서면서 커튼을 펼치듯 한꺼번에 풀어내는 것이다. 발명과 발견의 차이와 같다.
발명은 진흙을 주물러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발견은 이불장에 있는 이불을 꺼내서 펼치듯이 한꺼번에 쫙 펼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결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진흙을 주물러 모양을 만드는 데는 결이 없다. 그냥 주물럭 주물럭 해서 아무렇게나 만드는 거다. 커튼을 펼치는 데는 결이 있다. 결을 따라가야 창의적인 축구가 가능하다. 축구지능이 높아질 수 있다.
공수간격을 좁혀서 상대방과 거리를 짧게 하고 밀도있는 축구를 해야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힘의 밸런스가 파악되고, 그 밸런스에서 형이 나오는 것이며, 그 형을 거꾸로 뒤집는 형태로 창의가 나와주는 것이며 축구지능이 높아지는 것이고 바르샤는 그게 되는 팀이다.
이만기와 강호동이 대결한다면 서로의 샅바를 바짝 잡아당겨 최대한 힘을 실어야 밀도가 높아져서 상대방의 허점이 파악된다. 그럴 때 허위정보를 보내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다음 되치기하는 것이 전략이다.
공간의 밀도를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밀도까지 높여야 한다. 패스를 받으면서 0.5초 멈추어버리면 결은 사라지고 형은 만들어지지 않으며 밸런스는 소멸해 버리고 창의는 나와주지 않으며 진흙을 주물럭거리는 식이 되어서 아무 것도 안 된다. 이는 샅바를 당겨잡지 않은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샅바를 느슨하게 잡으면 아무런 기술도 걸 수 없다. 0.5초 멈추는 버릇 고치지 않으면 패스축구는 희망이 없다. 축구의 결을 읽지 못하면 계속 멈칫거리게 된다.
이청룡이 조광래 축구에 적응못하는 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청룡은 자기의 형 안에서만 0.5초 멈칫하지 않고 결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조광래가 이청룡의 형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고단수 축구를 펼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패스를 잘하자’는 정도이지 바둑의 정석처럼 물흐르듯한 제대로 된 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조광래 축구는 아직 진흙을 주물러 형을 만드는 단계이지 만들어진 형을 풀어내는 단계는 아니다. 변칙적인 단계일 뿐 창의적인 단계는 아니다. 겨우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정도일 뿐 아주 상대방을 바보 만들지는 못한다.
아이디어로 창의한다고 믿는 멍청이들 많다. 자기 자신의 내재한 결을 따라가며 주르륵 펼치는 고수의 창의와,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대응하여 상대적인 변칙을 쓰는 하수의 잔머리 아이디어는 레벨이 다르다. 한 두 번 속일 수 있을 뿐 고수에 의해 전부 파악된다.
article id #1653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진정한 창의
창의는 다르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가? 다 필요없고 오직 구조 하나를 다르게 해야한다. 그러므로 창의하려면 먼저 구조를 알아야 한다.
구조의 기본은 대칭성이다. 대칭은 둘이 어떤 하나를 공유하는 것이다. 밤과 낮,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남과 여, 하늘과 땅, 음과 양은 서로 마주보고 얽혀 대칭구조를 이룬다. 닫힌계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밀도를 걸어주면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하나의 영역에 둘이 공존하며 서로 얽혀서 이와 같은 대칭구조가 만들어진다.
대칭은 하나를 둘이 사용한다. 밤과 낮은 하루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원인과 결과는 하나의 사건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부부를 이룬 여자와 남자는 하나의 가정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음과 양, 빛과 그림자, 플러스와 마이너스, 앞과 뒤, 시작과 끝, 하늘과 땅은 모두 둘이 짝지어 대칭을 이룸으로써 어떤 하나를 공유한다. 그러므로 거기서 누가 위고 누가 아랫니며, 누가 앞이고 뒤인지를 다투어서 질서가 생겨난다.
건물의 입구와 출구는 하나인데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둘이면 필연적으로 공존의 질서가 요구된다. 하나의 출입문, 하나의 화장실, 하나의 통로를 두 사람이 동시에 쓸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만약 출입문도 둘, 화장실도 둘, 통로도 둘로 만들면 공존의 질서가 필요없지만 그만큼 비효율적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는가? 공유에서 나왔다.
◎ 에너지 – 어떤 하나를 둘이 공유함에 따라 얻어지는 이득
중력이든 강력이든 약력이든 전자기력이든 우주 안의 모든 힘은 어떤 하나를 둘이 공유하는 데서 유도되었다. 그 에너지의 결집을 가능케 하는 공존의 질서가 모든 진리의 기본이 된다.
*** 대칭은 시소처럼 하나를 둘이 공유한다. 이 중에서 하나가 빠져나가면 다른 하나도 소용없게 된다.
자연에서 효율성을 낳는 공존의 대칭구조는 다섯이 있다. 존재는 다섯가지 방법으로 타자와 공존할 수 있다. 다섯가지 방법으로 한 집을 둘이 함께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들 다섯 대칭의 공존방법을 알고, 현장에서 새로운 공존의 방법을 구조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 창의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창의는 오직 이 하나의 원리를 따르며 다른 창의는 없다.
소설이라도 여러 에피소드가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회화라도 여러 표현이 하나의 캔버스를 공유한다. 음악이라도 마찬가지고 패션이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하나 안에 둘을 집어넣는 것이 창의다. 과연 그 둘이 그 하나의 공간에 예쁘게 들어가주느냐가 창의의 문제로 된다.
리듬과 하모니와 멜로디의 강약과 고저와 장단을 기술적으로 대칭시켜 하나 안에 둘을 탈없이 집어넣을 수 있다.
◎ 모든 창의는 어떤 하나를 둘이 공유하여 에너지 작용의 효율성을 도출하는 존재의 다섯가지 대칭을 구조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다.
사람이 집을 사용해도 하나의 건물을 밤낮 2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고 또 월세를 들어 건물을 같이 쓰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듯이 자연계에는 다섯가지 공존의 방법이 있다. 100층 건물을 지어도 하나의 출입문을 모두가 공유한다. 모든 발명과 아이디어는 공유의 아이디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수백 개의 코스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출발점과 도착점은 하나로 공유된다. 총을 발명해도 하나의 총알을 사수와 표적이 공유하는 것이며, 칼을 발명해도 하나의 칼날을 무사와 적이 공유하는 것이다.
하나를 둘이 사용할 때 둘은 서로 얽히게 되며 바로 그것이 구조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발명과, 아이디어와, 혁신과, 창의와, 개척은 구조의 조직이며 그것은 둘이 하나를 공유하는 것이다.
◎ 1자 공존 – 점 : 대지를 공유한다.(오두막) ◎ 2자 공존 – 선 : 대지, 건물을 공유한다.(기차역) ◎ 3자 공존 – 각 : 대지, 건물, 대문을 공유한다.(연립주택) ◎ 4자 공존 – 입체 : 대지, 건물, 대문, 통로를 공유한다.(월세임대) ◎ 5자 공존 – 밀도 : 대지, 건물, 대문, 통로, 방을 공유한다.(빌딩로비)
빌딩을 지으면 1층 로비는 대지, 건물, 대문, 통로, 방을 모두 공유하게 된다. 그 건물을 출입하는 누구라도 1층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 하나를 월세로 내주면 집주인과 세입자는 대지, 건물, 대문, 통로를 공유한다.
연립주택은 대지와 건물과 대문을 공유한다. 요즘 인기가 있다는 땅콩주택도 하나의 건물을 두 집이 반씩 나누어 쓰는 형태라고 한다. 기차역이나 공항, 부두는 대지와 건물만 공유한다.
기차역은 단지 통과하여 갈 뿐이므로 담장이나 대문이 필요없다. 아프리카 부족민의 작은 오두막이라면 대지만 공유할 뿐 다른 그 무엇도 공유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섯 구분이 각각 공간의 차원들인 점, 선, 각, 입체, 밀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0차원에서 4차원까지다.
오두막, 역, 연립주택, 셋방, 빌딩 등의 구분은 필자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분류이므로 해석하기에 따라 구분이 달라질 수 있지만 점, 선, 각, 입체, 밀도의 차원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된다.
어떻게 창의할 수 있는가? 이러한 공존의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창의다. 이들 다섯 공존형태 사이에 일정한 서열이 있다. 빌딩로비 > 임대 > 연립 > 역 > 오두막 순으로 공유의 정도가 높다.
◎ 오두막 - 독점한다. ◎ 기차역 - 시간을 정해놓고 교대로 쓴다. ◎ 연립주택 - 칸을 나누어 각방을 쓴다. ◎ 월세임대 -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쓴다. ◎ 빌딩로비 - 공유한다.
하나의 건물 안에도 자기 방이 있다면 오두막이고, 화장실은 교대로 쓰고, 식탁은 칸을 나누어 쓰고, 부엌은 엄마만 쓰고(노동을 제공하고 대신 독점하므로 임대와 같다.) 거실은 TV처럼 모두가 공유하는 식이다. 거실을 혼자 쓴다면 거실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원룸이라면 거실과 부엌과 방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러하다. 요강을 사용하던 시절이라면 거실이 화장실도 겸했다.
여기서 거실, 부엌, 식탁, 화장실, 방의 구분은 필자의 임의적인 표현이고 중요한 것은 어떤 공간이라도 이런 다섯 공유형태는 반드시 있다는 점이다. 거실의 소파처럼 공유해야만 의미가 있는 공간이 있고, 독점해야만 하는 공간도 있다.
article id #1651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물레방아의 작동원리
하나의 구조는 이상과 같은 다섯 단위의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제공하는 물을 포함한 물레방아 전체, 입자는 물을 제외한 물레방아 부분이며, 힘은 물과 물레의 중심이 되는 바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운동은 물레를 제외한 방아부분만, 양은 그 방아의 공이만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림과 같이 분리하여 설명할 수 있다.
◎ 질 : 안팎을 포함한 전체 ◎ 입자 : 밖을 제외한 안쪽 전체 ◎ 힘 : 가운데 부분과 하부구조 ◎ 운동 : 하부구조 ◎ 량 : 말단부
위 다섯 단위의 대칭되는 부위가 구조를 이루는 각 부분의 특징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질은 물을 제공하는 홈통과 물을 포함한 물레방아 전체이지만 홈통과 물레가 만나는 점점 부분이 질의 성질을 가장 명백하게 나타낸다. 즉 질은 입자와 힘과 운동과 량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입자와 힘과 운동과 량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질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물레방아가 회전운동을 하므로 물은 물레방아 전체를 에워싼 채 계에 밀도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는 모든 부분에 질의 영향력이 작동하고 있다. 물레방아에 전해진 수력은 말단부의 공이까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전달되는 부위 전체가 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기계장치에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각 단위마다 인위적으로 차단기를 설치하여 개입하고 조작할 수 있으므로 그림과 같이 질을 입자, 힘, 운동, 량 바깥에 별도로 구분하여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하다. 자연에는 조속기나 차단기, 스위치 따위의 조절장치, 제어장치가 없으므로 질, 입자, 힘, 운동, 량까지 한 순간에 바로 에너지가 전달된다.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이 일어나는데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어느 선까지 에너지가 도달하였는지 파악하기는 불능이다. 그러나 인공적인 기계장치에는 각 단계에 차단기를 설치하여 조절이 가능하다.
◎ 질 – 홈통을 돌려 물을 끊을 수 있다. ◎ 입자 – 물레를 세워 물레방아를 멈출 수 있다. ◎ 힘 – 물레와 방아의 연결부를 분리하여 동력전달을 끊을 수 있다. ◎ 운동 – 방아의 길이를 조정하여 운동거리를 늘릴 수 있다. ◎ 량 – 공이의 크기를 조절하여 작업량을 조절할 수 있다.
시계라면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시침과 분침 초침 등으로 바늘을 여러개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자의 숫자를 늘릴 수는 없다. 입자는 독립성이 있으므로 해체할 수 있을 뿐 둘로 나눌 수는 없다. 자동차라면 기어를 1단부터 5단까지 늘릴 수 있지만 엔진을 둘로 늘릴 수는 없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면 하나의 자동차에 가솔린용 엔진과 전기용 엔진을 별도로 설치할 수도 있지만 이는 구조의 중복과 혼잡이다. 구조론의 원칙에 따라 중복과 혼잡을 배제했을 때 하나의 구조체에 엔진은 하나여야 한다.
질 개념의 이해가 중요하다. 모든 구조는 질의 성립을 전제로 한다. 닫힌계가 존재하며 내부에 스트레스가 걸려 있고, 계 내부의 밀도가 균일한 상태에 도달할 때 질이 성립한다.
만약 노예제도가 있다면 내부의 밀도가 불균일하게 된다. 해방을 바라는 노예들이 적의 침입에 저항하기는커녕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심각한 계급차별이나 상당한 소득의 격차가 있으면 그만큼 질은 불균일하게 되며, 그 경우 국가는 구조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일체의 차별이나 지역주의, 종교적 편견은 질을 불균일하게 만들어 구조를 취약하게 한다. 질이 불균일하다면 그야말로 망조가 든 것이다.
문제는 독자들이 흔히 물레방아에서 이러한 질의 성립 사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레방아는 회전하기 때문에 계에 걸리는 부하가 균일해진다. 그 결과로 수력이 전달될 때 물레에서 방아를 거쳐 공이까지 직접 힘이 전달된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스트레스가 걸린 상태가 된다.
여기서 계에 밀도가 걸린 상태, 곧 계의 긴장 혹은 스트레스를 심리학 용어인 정신적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면 곤란하다. 팽팽하게 당겨져서 밀도가 균일하게 된 상태가 스트레스 상태이다.
젊은 수컷 침팬지가 난동을 부려서 구성원 모두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게 된 상태가 스트레스가 걸린 상태이다. 심리학적 개념의 열받은 상태, 불쾌한 상태, 골난 상태가 아니라 미학적 개념의 이심전심 상태다.
대대장이 주관하는 사열식 때는 부대원들이 일제히 정렬해 있으므로 부분에서의 작은 움직임만 있어도 부대원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스트레스 상태이다. 계에 스트레스가 걸리면 이심전심의 대칭원리가 작동하며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김연아가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여 연기하고 있다면 각 부분에서의 작은 미스조차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때 앞부분의 실수를 어떻게 만회해야 하는지 그 다음동작은 자동으로 나와주는 것이다. 고도의 긴장이 걸려있기 때문에 그릇에 물을 떠냈을 때 자동으로 그 흔적이 메워지듯이 이심전심의 대칭원리에 따라 자동으로 해소된다. 그 순간에 김연아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밸런스 원리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진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 김연아가 그냥 얼음판 위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고도의 밸런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김연아 본인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밸런스 자체의 동력이 김연아를 끌고가는 것이며 김연아는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그 에너지의 흐름에 올라타고 가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질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다. 간단하다. 질은 계에 에너지가 투입되어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다. 그것이 열받은 상태, 흥분한 상태는 아니다. 어린이는 엄마 곁에서 편안하게 놀고 있지만 항상 엄마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곧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그것이 스트레스 상태이다. 물론 어린이는 그 팽팽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도 지극히 편안하다. 아기와 엄마 사이는 보이지 않는 줄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물레방아는 수압이 걸려 물레방아 전체에 스트레스가 가해지며 그 결과로 구조가 작동한다. 그것이 질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간첩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 다들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리더가 맹박스럽게 임의로 규칙을 바꾸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이 도입되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혼이나 이사를 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결혼은 즐거운 스트레스다.
사랑은 고도의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다. 항상 상대방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질이다. 입자는 엄마의 위치를 확인한 아기가 편안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기가 몰입하여 엄마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행동의 흐름을 끊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역시 아기는 엄마를 찾게 되어 있다. 스트레스가 걸려있지만 마음의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것이 입자다.
물레방아에 수압이 걸려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물레가 회전하여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므로 그 스트레스에 해를 입지는 않는 것이다. 데이트 하는 남녀는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지만 팔짱끼고 산책하는 동안은 전혀 마음의 스트레스가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입자의 상태다. 물론 그 데이트의 물레가 잘 돌아야 한다. 데이트가 삐꺽거리면 바로 스트레스가 밖으로 노출된다.
데이트 하는 남녀는 편안하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스트레스가 걸려 있으므로 끊임없이 그 스트레스를 외부로 배출한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등으로 자기 안에 들어온 스트레스를 밖으로 배출한다. 즉 수압에 걸려 스트레스 받은 물레가 그 스트레스를 방아로 돌려서 곡식을 찧는 것이다.
◎ 질-닫힌계에 에너지가 투입되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밀도가 균일해진다. ◎ 입자-내부에 센터를 형성하여 스트레스를 외부로 돌릴 수 있게 한다. ◎ 힘-스트레스의 진행방향을 틀어 스트레스를 외부로 배출한다. ◎ 운동-스트레스를 배출하는 속도와 거리를 조절한다. ◎ 량-스트레스가 외부로 침투한다.
계에 들어온 에너지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거쳐 다시 외부로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면서 그 외부의 주어진 대상 속으로 침투한다. 침팬지 무리든 기계장치든 인간사회든 이 작동원리는 같다.
청춘남녀가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일상의 부조리다. 도무지 살아갈 이유도 없고, 하는 일의 목적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그 때문에 아무런 의사결정을 못한다. 뒤로 가도 되는데 왜 구태여 앞으로 가는가? 놀아도 되는데 왜 구태여 일을 하는가? 그냥 자도 되는데 왜 굳이 일어나는가? 청소를 안 해도 되는데 왜 굳이 청소를 하는가? 도무지 의사결정을 못하는 것이다. 할 이유도 없다.
혼자 산다면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므로 청춘남녀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 모든 일에 이유가 생겨난다. 살아갈 이유는 연인 때문이다. 일하는 목적은 가족 때문이다. 앞으로 가는 이유는 역시 친구 때문이다. 이때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노상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의사결정 스트레스라는 하나의 근본 원인으로 귀일된다. 까뮈가 그의 이방인에서 부조리라는 이름으로 말하려 했던 것도, 샤르트르가 그의 여러 소설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판이 돌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유시민 때문에 도무지 의사결정이 안돼’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참여당은 ‘유시민이 있기 때문에 경상도표를 잘라서 박근혜를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승산이 생겼어. 의사결정이 잘 되고 있어.’하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단기적으로는 유시민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에 의사결정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이 분명하지만 유시민이 단일후보를 맡든, 혹은 유시민이 단일화 된 민주당 후보를 밀든 유시민이 진보진영 전체의 승산을 높여서 의사결정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야말로 가장 큰 의사결정의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스트레스는 믿기만 하면 해결되는 작은 것이고, 박근혜 스트레스가 진짜다. 설마 이 정도로 망치겠냐 하고 이명박 믿다가 발등 찍힌 사람 많다.
자연과학은 주로 태양에너지로부터 공급된 스트레스가 거쳐가는 중간단계를 줄여서 효율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자연이 전개하는데 따른 학문이다. 인문사회과학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주로 인구증가와 기술혁신으로 인하여 공급된 스트레스가 집단의 의사결정 단계를 줄여서 효율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진보하는데 따른 학문이다.
물론 필자의 이러한 기술에 반대할 사람이 많지만 구조론적 관점에서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과학계가 돌아가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언론귀족, 강남귀족, 재벌귀족, 정치업자 등 중간계급을 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의 밀도를 균일하게 만드는데 있어서의 가장 큰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보를 차단하여 의사결정을 지연시킨다.
물론 막연히 중간계급을 쳐부수기만 하면 독재자가 나타나 더 큰 의사결정의 장애물이 되므로 무조건 쳐부수는게 장땡은 아니지만, 인터넷의 등장과 같은 밑바닥에서의 부단한 혁신에 의해 새로운 중간고리들이 나타나므로 기득권 중간계급을 부단히 타파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방해자 집단에는 조중동 뿐 아니라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등 진보진영 안에서 선점권을 행사하는 진보기득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자본을 가진 자만 기득권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있어서 방해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진 자는 모두 처분되어야 할 기득권자다. 그러한 파워를 가진 자들은 오로지 더 큰 방해자를 타격할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이나 노조, 전교조, 시민단체 등은 더 큰 기득권과 싸울 때만 정당성을 획득하며, 단지 자기네 정치노선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얻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나의 노선은 옳다. 그러므로 나는 정당하다.’ <- 진보가 잘 빠지는 독선
집단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일정한 힘을 행사하는 중간집단의 정당성은 오로지 상부구조의 방해자를 타격하는 역할과 실천 안에서만 정당한 것이며 자의로 규정한 정치노선이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다.
학계든 정계든 기계든 자연이든 반드시 상부구조로 작동하는 물레방아가 있고 스트레스를 가하는 동력원이 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옳거나 혹은 합리성의 측면에서 옳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계를 줄이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장기적으로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의사결정단계를 줄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그 반대가 된다.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일시적으로 의사결정의 단계를 늘리게 된다. 진보는 반드시 일시적인 의사결정의 비효율을 수반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장기전략이 있으므로 그러한 일시적 비효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노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 몇 십년 뒤의 계획 따윈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계획은 기존의 계획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쟁이 일어나게 되며 장기전략을 가지고 미리 의사결정 단계를 줄여놓은 쪽이 승리하게 된다. 사회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에 의해 진보하는게 아니라 경쟁에 의한 승리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왜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쪽이 결국 승리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부도덕하고 비합리적인 쪽은 승부에서 이기면 반드시 멈춘다. 그러나 도덕성과 합리성을 가진 집단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정의는 옳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멈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의는 옳지 않기 때문에 패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기 때문에 패하는 것이다. 멈추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의는 반드시 멈추며, 정의는 결코 멈추지 않으므로 역사의 장기적인 승부에서는 언제나 정의가 이기게 되어 있다. 실제적인 사회의 진보는 정의나 불의 때문에 일어나는게 아니라, 정의와 불의의 싸움 과정에서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는 결과가 도출되어 그 효율성에 의해 일어난다. 단계가 줄면 효율이 늘고 그 이득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사회의 진보에 의해 의사결정단계는 계속 줄어든다. 인터넷에 의해 무명의 시민이 낸 아이디어도 곧바로 채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므로 그러한 단계줄이기 역할도 계속 주어진다. 혁신이 계속 단계를 새로 추가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영원히 이어진다. 보수의 단기적 효율성과 진보의 장기적 효율성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는 매뉴얼대로 하는 것보다 적당히 눈치껏 하는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이 반복되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잃어버린 바늘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쓰는 것보다 그냥 마구잡이로 찾는게 더 빠르다.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달라진다.
처음에는 보수가 효율을 달성한다. 그냥 찾는게 빠르다. 그러나 영영 못 찾는 수가 있다.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고 자석을 이용하면 그 과정에 시간이 걸리지만 대신 바늘을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잃어먹을 때는 매우 빨라진다. 만들어진 공식과 확보된 자석을 반복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계가 같은 부위에서 반복하여 고장난다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보다 대응수칙을 정해놓는게 낫다. 처음에는 귀찮게 대응수칙 따위를 왜 만드냐고 생각하지만 세월이 흘러 노련한 고참이 물러나고 어리버리한 신참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대응수칙을 정해놓는 것이 오히려 덜 귀찮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진보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효율을 달성하는 이유는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보수의 마구잡이 결정이 오히려 효율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진보는 지금 벌어진 상황이 단기적인 사건인지 장기적인 사건인지 일회성의 사건인지 반복되는 사건인지를 판단하여 유연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문제는 얼치기 진보 지식인이 도무지 구조를 모르므로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단기전인지 장기전인지, 일회성의 전투인지 반복되는 전쟁인지 모른다. 구조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상부구조는 일회성이고 하부구조는 반복된다. 하부구조는 매뉴얼을 만들고 상부구조는 임기응변해야 한다.
총선은 매뉴얼대로 가는 것이 맞고 대선은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총선은 지는 쪽에 지자체 선거에서 보상할 수 있지만, 대선은 그 보상의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민주당에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주지만, 민주당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고 실망을 주면 지자체에서 응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선은? 그렇게 바꿔치기할 응징의 수단이 없다. 이러한 구조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
직관력을 기르고 싶은가? 물레방아 그림을 기억해 두라. 깨달음을 얻고 싶은가? 물레방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라. 미래를 예견하고 싶은가? 물레방아의 다섯 단위 중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파악하라.
세상의 모든 것이 이 그림 안에 있다. 이 그림 속에 다섯 대칭이 있다. 우리는 그 다섯 중 하나의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재빨리 위 단계의 대칭으로 옮겨가는 쪽이 이긴다. 자신이 맞서 있는 적을 이겨봤자 소용없다. 상부구조로 옮겨가서 더 큰 적과 싸우면 하부구조의 문제는 저절로 해소된다.
article id #1649 categorized under [구조론 연구소]/구조 강론 & written by 창틀
중요한건 구조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띄워놓고 언제든지 필요한 때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느냐다. 그동안 구조를 모래시계나 천칭저울로 설명해 왔지만 움직임이 큰 물레방아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하기에 적당하다고 본다. 이 그림을 머리 속에 집어넣어 두었다가 필요한 때 꺼내쓰기 바란다.
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를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물레가 상부구조, 방아가 하부구조다. 물레가 사건의 원인측, 방아가 사건의 결과측을 나타낸다.
물레가 of(의하여), 방아가 for(위하여), 물레와 방아를 연결하는 부위는 by(통하여)가 된다. of(원인)-by(과정)-for(결과)가 일렬로 세팅되어 있다. 이러한 세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는 절대로 없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 수학이기 때문이다.
물레 <- -> 방아
◎ of(원인)-by(과정)-for(결과)
그림을 보면 방아와 확이 점의 형태로 양적 대칭을 이루고 있고, 그 방아를 움직이는 부위(디딜방아라면 디딜판과 방아 사이를 연결하는 몸체)는 선의 형태로 운동의 대칭을 이루고 있고, 물레에서 방아로 힘을 전달하는 부위는 각의 형태로 힘의 대칭을 이루고 있고, 물레 몸통은 입체의 형태로 입자의 대칭을 이루고 있고, 수력을 전달하는 물과 물레가 만나는 부분은 밀도의 형태로 질의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밀도-질의 대칭 (천칭) ◎ 입체-입자 대칭 (됫박) ◎ 각 – 힘의 대칭 (콤파스) ◎ 선 – 운동 대칭 (자) ◎ 점 – 량의 대칭 (눈금)
모래시계나 천칭저울도 정확하게 이런 구조로 되어 있지만 구조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물레방아로 설명하는 것이다. 자동차나 마차도 역시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구조가 같다. 패턴을 관찰하기 바란다.
별이나 우주나 은하나 다 마찬가지다. 산이나 강도 정확히 이런 구조다. 방아의 뾰족한 공이는 산봉우리거나 강이 발원하는 수원지다. 방아의 긴 연결부는 산의 능선이거나 긴 강줄기다. 물레와 방아의 연결부는 산과 평지가 만나는 산허리거나, 강의 지류가 만나 합수하는 두물머리다. 물레의 몸통은 모든 산맥을 받아들이는 대륙이거나 모든 강을 받아들이는 바다에 해당하고, 물이 흐르는 홈통은 중력이 흐르며 모든 산과 마다의 어머니인 지구다.
자연물이나 기계장치만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도 이런 구조로 세팅이 되어 있다. 외부에서 외교와 무역의 형태로 신기술이 들어오는 질이 있고, 원탁회의처럼 둥글게 앉아서 의논하는 물레의 입자가 있고,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연결부위의 힘이 있고, 길게 늘어진 부위의 운동도 있고, 뾰족한 말단부의 량도 있다.
심지어는 침팬지 무리에도 이런 구조가 있다. 침팬지 무리에는 외부의 위협세력, 경쟁세력이나 먹이환경 등 생존을 보장하는 외적인 환경조건이 질이 된다. 리더을 중심으로 한 서열구조가 둥글게 모이는 입자가 되고, 암컷과 새끼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대항권력이 힘으로 나타난다. 무리가 이동을 한다든가 등으로 리더의 결정을 집행하는 실행과정이 운동으로 나타나고, 먹이를 분배하여 먹는다든가 잠을 잔다든가 하는 최종적인 행동이 량으로 나타난다.
인간사회의 의사결정구조나 침팬지 무리의 집단행동이나 질은 외부에서 들어오고, 입자는 내부에서 둥글게 모여 군집을 이루고, 힘은 하부구조 중심으로 대항권력을 형성하여 반대방향으로 비틀고, 운동은 길게 한 줄로 늘어지고, 양은 점점이 끊어지는 형태로 모두 합쳐서 물레방아를 이룬다.
물레방아의 이미지로 기계장치 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질서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특히 세번째 힘은 물레와 방아의 연결부위가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가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한다. 정치판에는 회기에 여야가 붙었다가 회기가 끝나면 떨어진다. 출근시간에 붙었다가 퇴근시간에 떨어지고, 데이트 할 는 붙었다가 데이트 끝나면 떨어진다.
◎ 질 - 질은 수압의 형태로 에너지를 가지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이다. - 사회는 의사결정구조 중심이므로 적대자에 의한 긴장의 공기가 물레방아를 돌린다. 역시 긴장은 외부요인에 의해 촉발된다.
외교나 무역 등 대외활동도 질을 형성한다. 신기술의 개발이나 아기의 출생과 같이 새로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레방아는 아무 데나 놓는 것이 아니고 물레방아가 들어서기에 적당한 위치가 있다. 국가의 발전에는 지정학적 구조가 중요하다. 한국은 인류의 21세기가 물레방아 놓을 만한 장소이기 때문에 급격히 발전하는 것이다.
◎ 입자 - 입자는 물레방아의 둥근 바퀴다. 바퀴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바퀴살이 사방으로 균일하게 정렬하는 형태로 내부를 통제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 사회에서 바퀴의 축은 의사결정권을 위임받은 리더다. 리더 1인에게 정치적 긴장이 집중된다. 역시 리더를 중심으로 균일하게 사방으로 정렬한다. 물론 리더가 명박스러우렴 바퀴가 둥글지 않고 고소영 중심으로 모나서 그 물레방아는 삐꺾거리게 된다. 리더는 언제라도 둥근 원탁의 센터여야 한다. 등방성 대칭성의 균등원리가 깨뜨려지면 돌지 않는 물레방아가 된다. 그 사회는 고장나고 만다.
한편으로 물레방아가 포켓 형태의 됫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입자는 부피로 나타나므로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용기 형태의 들이가 된다. 그 들이로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 외부가 반드시 국외는 아니다. 새로운 것은 모두 계의 외부다. 리더는 신기술, 신인류, 신입생, 신병을 받아들이는 자리다. 리더가 그임무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즉 탄핵된다. 정치판에도 새로 유권자로 들어가는 신규자원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리더의 역량이 결정된다.
◎ 힘 - 힘은 방향을 바꾼다. 힘은 기어의 톱니나 칼의 날이나 펜의 촉이나 전축의 바늘이나 모래시계의 좁은 틈과 같이 뾰족하고 예리한 접촉부를 가진다. 이 부분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므로 가장 가운데서 보호되고 있으며 대개 이 부위가 제품의 성능을 결정한다. - 사회에서 힘은 방향전환을 가능케 하는 장치다. 민주국가는 선거의 형태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정권교체를 하거나 이미 결정된 의사를 바꿀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대항수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걸어주는 대항권력이 없으면 속도조절에 실패하여 계가 붕괴되고 만다.
대항권력의 적극적인 역할이 물레의 둥근형태를 유지하게 한다. 만약 대항권력이 없다면 계는 힘이 작동하는 부위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중심으로 코끼리 코처럼 길게 자라서 결국 균형이 깨져서 두동강이 나고 만다. 성장촉진제를 너무 많이 뿌려서 수박이 폭발하는가 하면 속이 빈 딸기가 맺히듯이 속도조절이 안 되면 밸런스가 무너져서 죽는다.
◎ 운동 - 운동은 힘을 전달한다. 운동을 하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며 그 시간을 반영하는 것은 거리다. 거리조절을 통하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며 대개 이 부분이 강약을 조절하는 조절부가 된다. - 사회에서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실행하는 행정조직, 집행부, 실행조직이 된다. 국가에서는 주로 산업이 그 역할을 한다.